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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기행문 - 선암사

형이... 기행문이나 쓰고 앉아 있을 정도로 부지런하지는 않고...

과제 제출용으로 건방지게 한번 써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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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 기슭 선암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들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히 젖고 있었다....................................................................는 표절이고...........................................

 

어떻게 이렇게 쓰나;;;;;

 

 

  한 여름 친구와 자전거 여행을 할 때 일이다. 소백산을 넘으며 땀을 식히려 잠시 들른 절에서 우리를 반겨준 것은 스님의 염불 소리도, 목탁소리도 아닌 시원한 바람과 그녀가 흔드는 풍경소리였다. 정적 속 이 소리는 오히려 나를 더 깊은 고요로 안내했다. 그 후 나는 풍경소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늙은 ‘땡중’마저 없는 고즈넉한 산사에서 조용히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그게 내가 절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굳이 풍경소리를 찾아 선암사까지 찾아갈 이유는 없었다. 전에 가봤던 곳도 아니고, 선암사에 대해 특별히 아는 것도 없었다. 선암사라는 곳을 알게 된 것은 서평을 쓰기 위해 읽은 ‘한국의전통문양’이라는 책 속에서 이었다. 사실 그 책에서 조차 선암사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승선교 때문이다. 그 책 속의 무지개 모양다리, 다리 아래로 보이는 누각. 그림 같았다. 그림 속에서 듣는 풍경소리가 기대되 그곳에 가보았다.

 

  선암사는 전라남도 순천, 조계산에 위치한 절이고, 승선교는 선암사로 향하는 길 계곡에 놓인 아치형의 다리이다. 선암사의 역사는 통일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를 거쳐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조선시대에 다시 중건했고, 이 다리 또한 임진왜란 이후 사찰을 중창할 때 가설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승선교에 대해 전해지는 얘기로는 숙종 24년 호암대사가 관음보살을 보려고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뜻을 이룰 수 없자 자살을 하려 했다. 그때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했다. 대사는 이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세우고 절 입구에 승선교를 세웠다고 한다.

 

  사실 그렇게 유명한 다리인지 몰랐지만, 명성에 맞게 많은 사람들이 계곡에 내려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도 그 무리와 섞여 사진을 찍어 보았는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다리 아래 무엇인가 튀어 나와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것은 용두를 조각한 것으로 물길을 거슬러 올라오는 악귀를 쫓기 위한 장식으로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또한 그것을 빼면 다리가 무너진다는 속설도 있는데 여간 단단히 박혀있지 않아 보였다.

 

  다리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했지만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다리를 지탱하고 있는 바위들을 생각보다 컸다. 그 시대 사람들은 분명 이것을 손으로 옮겨 쌓았을 텐데, 이런 아름다운 다리를 만들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분명 노동에 징집되어온 마을 사람들이 관리의 감시 하에 돌을 옮겨 쌓았을 것이다. 후대사람들은 자연과 어우러진 그 다리에 감탄하겠지만, 당시 사람들은 둘이 들기에도 버거워 보이는 이 바위를 하나하나 옮겨 쌓을 때마다 신분을 탓하며 투덜댔을 것이다. 승선교 조금 아래 아치형 다리를 하나 더 보았는데, 굳이 다리를 하나 더 만들다니. 아이러니 하게도 당시 사람들의 고된 노동은 후대사람들에게 경이로움을 남긴 것 같다.

 

  매끈한 아랫면과는 달리 돌을 쌓아올린 부분과 닿는 면은 돌의 연마가 고르지 않았다. 그 위에 쌓아 올린 돌 또한 자연석을 이용한 듯 그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그 돌마저 반듯이 깎아 쌓아 올렸다면, 이렇게 자연에 어울러 지지 못했을 것 같다. 사람 손으로 만든 인위적인 건축물의 사람 손때가 시간에 씻겨 자연과 어우러지고 있었다. 백 몇 년의 세월과 함께 변하는 강산사이에서 허물어지지 않고 그 모습을 지키고 있는 돌덩이들이 기특했다.

 

 

 

 [승선교]

 

 

 

  승선교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선암사가 나왔다. 선암사 초입에 세워진 하마비는 이곳이 부처의 땅임을 말해줬다. 선암사 일주문은 맞배지붕으로 기둥과 지붕만 있을 뿐 문이 없었다. 두 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지붕의 공포는 사치스러울 만큼 장식이 화려했지만, 색을 절제해 검소해 보이는 이중성을 띄었다. 헌데 일주문뿐만 아니었다. 대웅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건물은 다포식으로 공포는 화려했고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화려한 공포 사이사이에 단아하게 그려진 인물들이 가지런히 앉아있었다. 하지만, 칠은 화려하지 않았다. 반면 익공식 건물의 소박한 공포에는 아름다운 칠이 더해져 있었다.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 인지 아니면 이 건물들의 칠만 복원을 안 한 것 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선암사 일주문]

 

 

  팔작지붕의 대웅전 내부는 외부 이상이었다. 대들보와 천장의 색은 보다 선명하고 정교한 문양으로 채워져 있었다. 외공포에 뒤질 세라 내공포역시 그 치밀함을 뽐내고 있었다. 대들보위 용 네 마리는 무거운 지붕을 받치고 있었다. 승천하려는 용을 부처의 힘으로 막은 것인지, 부처를 지키려 스스로 지붕 밑으로 파고든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입에 물고 있는 여의주가 신기할 뿐이었다. 조각 되어진 용의 주둥이에 끼워 넣기는 그 크기가 크고, 용두와 함께 조각되었다면 그 정성이 놀랄 만하다.

 

[대웅전 내부]

 

  그 밖에 공중에 떠있는 듯한 측간역시 인상적이었다. 입구를 제외한 건물 안쪽은 지면과 건물을 띄어져 있었는데, 그 이유는 냄새를 멀리하기 위함이라 했다. 다른 건물들과 비교하면, 컬러사진사이에 흑백사진 한 장과 같은 느낌으로 차분하지만, 화장실이라기엔 크고 웅장해 스님들이 근심을 해결하기에 주변의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사산의 해우소가 이렇게 큰 공동화장실 이라는 것이 낯설었다. 뿐만 아니라 지붕이 왠지 모르게 이국적인 느낌이었다. 다른 재래식 화장실과 달리 냄새가 조금 덜 날 뿐이지, 해우소란 이름과 이국적인 목조 건물이 냄새를 가려주지는 않았다.

 

  

 

  

  붐비는 사람들을 피해 조용한 곳을 찾다보니, 가장 안쪽에 산신각이라는 곳까지 발걸음이 닿았다. 선암사내의 가장 작은 목조건축인 이 건물은 한사람도 채 들어갈 수 없이 작았다. 불상대신 그림이 그러진 이 건축물 안에 공양하기 위해 놓은 천 원짜리 지폐들의 유혹은 청결한 불심이 아닌, CCTV가 지켜주고 있었다. 작지만 기둥을 세우고, 기와를 올린모습은 다른 건물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장 안쪽, 외진 이곳의 건물에도 정성을 소홀이 하지 않다니, 조계산 산신은 이 작은 건물이 그리 섭섭하지 않을 것이다.

 

[선암사 산신각]

 

  기대했던 조용한 산사가 아닌 많은 관광객들과 부대끼다 보니 여간 피곤하지 않았다. 또한, 속세를 떠난 스님이 ‘무소유’하지 아니하신 스마트 폰의 통화가 왠지 모르게 낯설고, 섭섭한 느낌마저 들었다. 가장 아쉬운 점은 풍경에 달린 바람에 흔들이는 물고기가 모두 떼어져 풍경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법종루밑에 기생하고 있는 기념품 상점에서 파는 오만 원짜리 풍경이 부처의 자비로운 마음을 헤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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