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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이제는 사람들을 보는 눈도 달라져서, 영리하고 오만한 태도는 예전보다 약해졌고, 대신 더 따뜻한 마음과 호기심과 관심을 갖고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여행자나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 장사꾼, 전사, 여자를 태우고 강을 건널 때도, 더는 이들이 예정처럼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생각이나 통찰이 아니라 오로지 충동이나 욕망에 이끌리는 그들의 삶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 자신 또한 그들과 비슷한 존재로 여겨졌다. 그는 완성의 경지에 다가가고 있었고 최근 입은 상처로 고통받고 있었음에도 이제 그에게는 이런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이 형제처럼 느껴졌고, 그들의 허영심, 탐욕, 우스꽝스러운 특성들은 더이상 웃음거리가 아니라 이해될 만한 일이었으며, 사랑스럽고 심지어 경탄할 만한 것으로까지 보였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맹목적인 사랑, 외아들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어리석고 맹목적인 자부심, 보석을 바라며 남자들의 경탄 어린 눈길을 갈구하는 허영심 많은 젊은 여자의 거칠고 맹목적인 욕구, 그 모든 충동과 모든 어린아이 같은 짓들, 모든 단수하고 어리석으면서도 더없이 강하고 어마어마한 생명력을 지니며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 드는 강력한 충동과 탐욕, 그 모든 것이 싯다르타에게는 더이상 유치한 짓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바로 그런 것들 때문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것들 때문에 무한한 업적을 성취하며, 여행을 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고 많은 것을 참아낸다는 것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그는 그들을 사랑할 수 있었고, 그들 각각의 열정 속에서, 그들 각각의 행위 속에서 생명, 살아 있는 것, 불며의 것, 브라만을 불 수 있었다. 사람에게는 이와 같은 맹목적인 성실함, 맹목적인 힘과 강인함이 있기에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고 경탄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아싸고, 지식이나 사색가라 하더라도 사소하고 하찮은 한 가지, 의식하는 것, 즉 모든 생명의 단일성을 의식하는 사상만 제외하면 그들보다 더 나은 것이 없았다. 싯다르타는 이따금 그런 지식, 그런 사상이 그토록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 의심스러웠고, 그런 사상 역시 따지고 보면 사고하는 인간들, 아니 사색하면서도 어린아이 같은  인간들의 유치한 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밖의 다른 모든 면에서는 세속적인 인간들도 현자와 대등한 위치에 있었으며 때로는 현자보다 훨씬 우월했는데, 불가피한 상황이 닥쳤을 때 끈질기고 확고한 행동을 취하는 짐승이 그 순간 인간을 능가하는 듯이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